교회학교 및 소회 소식

2월 목회서신

요나회
작성자
sangjin yoo
작성일
2019-02-12 05:56
조회
153

목회서신 2


안녕하십니까? 요나, 그대...

그대에게 접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좌변기에 앉아서 칫솔질하는 것 말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한 개도 없는 그저 그런 아재의 2월 목회서신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제 직업은 목사가 아니라, 트럭드라이버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전례 없는 폭설이 온다는 예보가 걱정되어 새벽에 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가라앉은 하늘 때문에 창밖은 더 고요하고,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눈을 기다리는 동안 그대에게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아마 제가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3학년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짝꿍의 이름은 김삼희였습니다.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학년 첫날이었습니다. 처음엔 뭔가 좀 모자르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바보였습니다. 글씨를 깨우치지 못해서 반에서 공부는 꼴찌에다가 아이들에게 늘 놀림 당하고, 괴롭힘 당하고, 맞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바보는 항상 즐거웠습니다. 맞고 울면, 그 때 뿐이었습니다.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실실 웃는 품이 영락없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에는 그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수용할 시설들이 없었던 거지요. 선생님은 그 많은 친구들 중에서 그 친구를 제 짝으로 주셨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고 해야 하나 저는 그렇게 좋은 짝꿍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에서 중요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반장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반에서 운영하는 학급비 공금을 도둑맞은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그 때부터 도둑잡기에 나섰는데 그 때, 겪은 고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께서 뭐 이런 유의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 돈을 가져간 사람은 우리들 중에 하나일 텐데, 이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그리고는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십니다. 돈을 가져간 사람은 모든 것을 용서해 줄 테니, 손만 들으라고 하십니다. 아무도 손 든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게 한 다음 67명의 허벅지를 큰 몽둥이로 있는 힘껏 때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게 하고 난 뒤에 손을 들게 하셨습니다. 아무도 손 든 녀석이 없는 모양입니다. 화가 난 선생님은 모두들 운동장으로 나가라고 하십니다. 그 때부터 우리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기합을 받은 것인데 운동장을 뛰게도 하시고, 어깨동무로 쪼그려 걷게도 하시고 한 나절동안 고통을 받았습니다. 도중 도중에 자수(?)를 권유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은 번번이 무산되었고 그 때마다 더 강도 높은 기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떨어진 솔잎을 주워서, 양 팔을 벌리고 양 손으로 하나씩 하늘을 향해 들게 하고 눈을 감게 하셨습니다. 거짓말쟁이의 솔잎이 점점 뚱뚱해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양팔을 벌린 아픔보다 내가 든 솔잎이 혹시 뚱뚱해지면 어떡하나하는 조바심이 어린 제 가슴을 더욱 콩닥콩닥 뛰게 했습니다. 그렇게 으스름 저녁이 왔습니다. 다른 반 아이들은 모두 삼삼오오 떼를 지어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 반만 남아서 운동장에서 기합을 받고 있었습니다. 대열 여기저기서 계집애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선생님께서는 다시 교실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교실의 아늑한 자리에 앉은 우리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주시고는 획기적인 제안을 하나 하셨습니다.

“돈을 가져간 사람은 여기 종이에다 자기 이름을 쓰기만 해라! 모든 것을 용서해 주고, 또 가져간 돈도 되돌려 받지 않겠다. 또 죄를 묻기 위해 부르지도 않겠다!”

이쯤 되면, 그 도둑이 자수하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종이가 다 걷혔습니다. 선생님께서 한 장 한 장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다 펴 보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굳어진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저처럼 아마 반 아이들의 마음도 다 무너졌을 것입니다. '이젠 죽었구나!'  그런데 선생님은 한참을 칠판만 바라보시다가 다시 종이를 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중에 돈을 가져갔을 것 같은 사람의 이름을 써라!”

누구를 썼을까요? 대부분 제 짝꿍 삼희의 이름을 썼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실 저도 그 이름을 썼습니다. “김삼희”, 사실 우리 반의 누구도 삼희가 그 돈을 가졌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삼희는 거짓말이 뭔지도, 도둑질이 뭔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희가 “너 나중에 두고 봐!”하며 앙갚음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일일이 종이를 다 펴 보셨습니다. 그리고, “김삼희! 이리 나와!”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아마 선생님도 삼희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희는 그날 저녁에 그렇게 질질 끌려가고, 우리는 어둠 넉넉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따뜻한 집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로 삼희가 어떻게 된지를 모릅니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했다는 이야기도 듣고, 무슨 직물공장에 다닌다는 소문도 듣고, 아직 삼희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 지독한 사춘기 시절, 한참 2교대 공장의 노동에 서러웠던 열여섯 즈음에 삼희와 비슷한 바보 하나를 또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입니다. 성서 이사야 53장 2절 이하에는 제가 만난 그 바보의 모습을 참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대... 요나, 오늘 아침은 이 말로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샬롬!”
이 샬롬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평화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흔하게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이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를 말합니다. 요나, 혹 힘들어도, 막막해도 이 바보 같은 분이 주시는 평화로 행복하십시오.

저는 그렇습니다. 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약 3주간 동안 요나회의 목회를 쉬었고, 그 3주간 동안 그대에게 둔 미안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늘 아침마다 오늘의 읽을 말씀을 일러주시는 하영씨의 단톡방 말씀안내 후에 붙인 저의 인사말, 어저께 인사말이 지금 저의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고, 진실한 말씀입니다.

“다시 시작!”
생각해보면, 시작이란 못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못나서, 못나서 온몸으로라도 밀고 나가야 할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다시 시작!”은 잘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난 사람들은 그대로 쭉 가면 됩니다.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지요. 시작은 못난 사람들이 합니다.

잠긴 공장 정문 앞에서 서성이는 못난 노동자들이, 새벽 인력시장 모닥불 옆에 웅크린 못난 노가다들이, 갈아엎어야 할 묵정밭 앞에서 한숨부터 짓는 못난 농부들이, 100번도 더 서류를 내고도 면접 한 번 보지 못한 못난 청년들이, 한번쯤 철저한 절망의 무게 때문에 힘들고, 지쳐서 쓰러졌던 우리 같은 못난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시작은 작고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작”이라는 말처럼 가슴 설레는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그대 요나, 오늘 2019년 2월 12일, 지난날의 남루한 그 눈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처음만나는 새눈이 내리는 오늘의 새하루를 다시 시작합시다!

“샬롬!”
저는 이 평화로 다시 시·작·할·라·고·요

----- 2019년 2월 12일, 새눈을 기다리는 새벽, 유상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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